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이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흐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거울 겨울 2
설운 것이 역사다
두려운 것 역사다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 역사
아하
그 역사의
잔설 위에 서서 오늘 밤
별밭을 우러르며
역사로부터 우주를 보고
우주로부터 역사를 보고
잔설 속에서 아리따운 별밭을 또 보고.
길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 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들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 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돌아오리란
댕기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만남
밤이라도 이리 깊으면
밤이라 할 수 없겠지
앞길 뒷길 다 끊긴 곳에
문득 노여움처럼
난데없는 희망 한 오리.
백방 8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삼키리라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밟으리라
삼켜도 밟혀도
떠나가야 하는 바다
떠나가야 하는 바다
바다
네 이름
바다는 그대에게 내 그대에게
백방 뒤꼍 후미진 뻘밭 마지막 떠나던 목선
전 잡고 넘어지던 그대
그대에게 마지막 줄 것
이름뿐
마지막 줄
비단 주머니 속에 든 것은
바다뿐.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아직은 따스한 토담에 기대
모두 토해버리고 울다 일어나
무너진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무것도 없는
댓잎 하나 쓰적일 바람도 없는
이렇게 비어 있고
이렇게 메말라 있고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저 불 켠 방의 초라한 술자리 초라한 벗들
날이 새면
너는 진부령 넘어
강릉으로 오징어잡이, 나는
또 몸을 피해 광산으로 가야 할 마지막
저 술자리
서로 싸우지 않고는 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낯선 마을의 캄캄한 이 시대의 한 밤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아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빈 산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사랑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팔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새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 새워 물어 뜯어도 닫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세라 아 뜨거운
새하얀 사슬 소리여
날이 밝을 수록 어두워 가는
암흑속의 별밭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 넘어
멀리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뜨거운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새벽 두시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애린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 끝에
홀로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중심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틈
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틈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푸른 옷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 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황톳길
(1)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2)
밤바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3)
대?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4)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5)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면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회귀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을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不歸
못 돌아가리
한번 딛어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못 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 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윈 넋 홀로 살아
길 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여 잠들어서 덧없이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오적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 국회의원(국獪의猿)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 장성(長猩), 장차관(暲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형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 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것
보릿대 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 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새 봄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사진출처(내 영혼의 깊은 곳)
[김지하가 말하는 '지하'라는 필명]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김지하 金芝河 (1941. 2. 4 ~ )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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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야기
민주화의 상징, 그 곰삭은 영혼의 언어
김지하는 5.16 쿠테타 이후 30여년 간 계속되었던 군부독재 상황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시를 쓴 시인이다. 그 시절 그는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고, 그의 삶과 문학이 하나의 신화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는 척박한 황톳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육신의 상처를 붙안고 그 상처보다 더 곰삭은 영혼의 상처를 추스리면서 살아야 했다. 몸은 '오적'들에 의해 억눌리고 귀와 입은 틀어막혀 신산스런 모독의 상처를 붙안은 채 견디거나 버티거나 저항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면서 삶이 아니었던 것, 차라리 죽음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하고보니 그런 나날들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이들은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속절없는 체험을 해야 했다.
1970년 그가 담시 '오적'을 발표하자 공안당국은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한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의 부정부패 분자들을 통열하게 풍자하면서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정면에서 문제삼은 일종의 단형 서사시가 바로 '오적'이다.
김지하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하게 실존과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런 체험을 감당해야 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제목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현실을 견디고 문학으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여러 형태의 죽임과 죽음 체험의 절정에까지 이르렀던 그였다. 그 절정에서, 혹은 타는 목마름의 절정에서, 그는 죽임의 현실을 초극하고 진정한 '생명의 바다'를 지향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큰 시인다운 면모에 값한다.
시력(詩歷) 30년을 넘긴 그가 <중심의 괴로움>에서 이른 세계는 삶과 죽음의 세속적 갈림을 탈탈 털고 넘어선 해탈의 지평이요, 뭇 존재들이 서로 일으키고 피차의 경계를 허허로이 넘어서며 융섭하고 상생하는, 그래서 궁극으로 꽉찬 둥근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空)의 세계인 만공(滿空)의 우주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저서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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