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여태껏 무이당 장일순 선생을 알지 못했다. 스승님의 소개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분의 생명운동을 알게 되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 그의 생명운동은 공생운동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비판하면서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즉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으며, 나락 한 알 속에도, 아주 작다고 하는 머리털 하나 속에도 우주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주가 없으면, 지구가 없으면, 하늘이 없으면, 땅이 없으면, 바람이 없으면, 물이 없으면 생명은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미물들조차도 사랑해야한다고 말하는 그는 단순한 개인적 윤리의 차원을 넘어 진실로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노력한 탁월한 사상가라는 생각까지 갖게 했다.
이 책을 통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을 알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살아온 한 거룩한 인물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저자 장일순은 서예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세운 대성학원을 자신의 고향인 원주에서 전 재산을 털어 대성학원을 설립하였다. 생명공동체인 한 살림 운동을 주창하여 많은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을 받아 왔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관군에게 잡혀간 곳인 원주시 호저면에 비석을 세워 그 뜻을 기리는 사업도 전개했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종교의 말씀은 다 같아요. 어차피 삶의 영역은 우주적인데 왜 담을 쌓습니까? 그것은 종교의 제 모습이 아닙니다. 이제 생명의 단위는 우주의 단위입니다. 모든 생물은 태양과 지구가 존재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생명이 빠지면 종교가 아니지요.”라는 말이었다. 생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종교를 뛰어넘었다. 다양한 종교 이론으로 설명하는 그는 깨달음을 얻고서 독재 정권 퇴진에서 생명운동으로 전환을 했다.
이 책은 무이당 장일순 선생이 쓴 글, 그리고 강연과 대담을 그대로 옮겨 놓은 형식으로 전개했다. 중간쯤에는 관련 사진을 실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도록 배려를 했으며, 말미에는 인터뷰와 <녹색평론> 발행 편집인의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뷰와 강연이 많다보니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특히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상이나 무이당 장일순 선생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몇 번에 걸쳐 나왔으나 흐름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2. 나를 확장시킬 책 속의 내용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침묵은 존재의 자궁입니다. (p.5)
만상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p.10)
선화(禪畵)에서 달마가 갈대를 타고 물을 건너가는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건 왜? 천상천하가 바로 ‘자기’야. 천상천하가 바로 ‘자기’라고. 일체가 ‘자기’라고. 그런데 자기 몸이 ‘자기’는 아니야. 자기 몸이 ‘자기’가 아닌 동시에 전체가 ‘나’란 말이야. (p.29)
우리나라 증산교의 강일순 선생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해서 맨 시작의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마디로 주판을 다시 놓자는, 우리의 생활을 회개하고 잃어버린 영으로 돌아가자는 그런 거지. (p.40)
물자 하나하나는, 거기에는 모든 자연의 움직임이 역사하시는 동시에 인간의 노력이, 피와 땀이 함께한 거다 이 말이야. (p.41)
장자 말씀에 “귀로 듣지 말아라 맘으로 들어라, 맘으로 듣지 말아라 호흡으로 들어라” (p.43
)
하나님과의 대화란 건 뭐냐. 자기를 비우고 스스로 그 비운 마음을 보는 거예요. (p.65)
우린 그렇게 둘러 가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서 하늘과 땅과 대자연, 그 속에서 이 만물과의 관계를 깨닫고 우리 자리를 깨달아서 ‘알뜰함’과 ‘소박함’을 배워야 합니다. (p.73)
좋은 건 제가 집어 먹으면서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그래 가지고 민주주의가 되겠어요? 민주주의는 상대에 대한 존경과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데서 오는 거지. (p.75)
천지자연의 원칙대로 그 돌아감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그것에 맞춰서 생활에 동참하는 것. 그 속에서 일을 처리해나갈 때 어떻게 되느냐. 그때 자기의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시(侍)의 틀 속에서 자기도 생활하고 나아간단 말이지요. (p.83)
너의 아버지 어머니가 (너를) 낳기 전 너의 원 바탕은 뭐냐를 참구해봐라. (p.102)
나락 한 알 속에도, 아주 작다고 하는 머리털 하나 속에도 우주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다. (p.103)
사물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가 뭐다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의 신앙도 깊어지는 거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던 간절한 심정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p.105)
우리는 그동안 경쟁문화 경쟁문명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언제나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p.126)
생명으로써 위로를 주는 것이요, 진리로써 위로를 주는 것이요, 사는 나눔의 길에서 위로를 준다는 얘기지. (p.142)
노자의 ‘물처럼 사는 삶’이 떠오른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선 둥글고 모진 데선 모지다. 많이 모아도 물, 작게 갈라놓아도 물이다. 끓여 증발해도 물이요, 얼어도 물이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끝내 자기를 잃지 않는다. 또한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은 아무것도 아니나 바다의 성난 파도는 무섭다. 즉 가장 유약한 것이 가장 강할 수 있다. (p.154)
그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그의 바위 같은 신앙이 ‘산을 옮길’ 수 있으리라 믿으며, 전 생태계를 자신의 피붙이로 받아들이려는 데는 얼마나 섬세한 감각과 자기포기가 수반되는 걸까를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 하셨는데, 그런데 저 같은 경우 24시간 중에 깨어 있는 시간은 한 시간도 못 돼요”라고. (p.164)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만물이 위대한 것입니다. 풀 한 포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자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 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래 전부 위대한 것입니다. (p.176)
모든 종교의 말씀은 다 같아요. 어차피 삶의 영역은 우주적인데 왜 담을 쌓습니까? 그것은 종교의 제 모습이 아닙니다. 이제 생명의 단위는 우주의 단위입니다. 모든 생물은 태양과 지구가 존재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생명이 빠지면 종교가 아니지요. (p.188)
오늘날 문제를 환경의 문제다, 이렇게 봤을 때는 자연을 들러리 세우는 입장밖엔 안 되는 거지요. 또 하나 오늘날 독일의 녹색당이란 것은 생태학적인 관점인데, 그 방법은 대상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차원이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p.233)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세계의 큰 부분에서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비 시장 논리라는 것, 그리고 이른바 산업문명사회 내부에서도 자치적 삶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잇다. …… 낭비와 파괴를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기구로부터 가능한 한 독립성을 유지하여, 자치적 ‘해방구’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생활협동운동이라고 할 때, 이러한 독립을 위한 노력 그 자체는 생태학적 건강을 되찾으려는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 교환가치가 아니라 진정한 유용성의 견지에서 수용할 수 있는 틀로서 구상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농산물 직거래를 앞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239-240)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활개를 쳐온 것은 개발 이데올로기였다. 이것은 각각의 사회에 고유한 토착적 풍토와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구미산업사회의 생활양식을 무조건적으로 모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공업화를 통한 발전전략이 패권적인 지배를 누려왔고, 여기에 따라 농업도 오로지 생산성의 증대라는 한 가지 목표를 배타적으로 추구하도록 강제된 결과, 거의 모든 농토는 엄청난 화학약품과 기계의 적용으로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p.241-242)
대체에너지를 언급할 것이 아니라 토착전통사회에서보다 1인당 평균 100배 이상이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산업사회의 낭비적 구조의 전면적 수정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p.243)
실로 풍부한 인간적 생활과 자연적 생활을 누릴 수 잇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을 적에는 물량이나 편의, 이런 것을 가지고 비교 우위적인 잣대로만 성장해온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근원적인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생활이 보편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지요. (p.255)
오늘날의 문명이 이(利)만 생각하지 의(義)를 중히 여기는가. (p.270)
서로 받아들이고 조화가 되는 것, 그게 바로 통일이란 말이야. (p.270)
정치는 신뢰로 하는 것 아닌가. (p.273)
책을 통해서 지혜롭고 맑은 정신을 지닌 선현들과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독서를 계속했고, 그런 독서를 통한 깨달음이나 앎을 아무 격식 없이 생활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자유로이 나누는 것을 아주 좋아한 것으로 보입니다. (p.284)
기쁘게, 즐겁게 읽는 행위를 통해서만 독서라는 게 우리한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체험이 되고, 살아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88)
21세기 민주주의가 명실상부한 민주주의가 되자면, 제비뽑기를 통한 선출방식이 적극 고려돼야 합니다. (p.305)
서구식 민주주의는 따지고 보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한 착취와 수탈의 산물이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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