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개인글

[스크랩] 김승옥선생님 전시회에 다녀와서

한적한길 2016. 8. 12. 18:16

 

 

 

 

 

 

선생님께서 세종대 재직 시절 후배인 모 여성개발원 원장의 간곡한 권유로 소설반 강의를 맡으셨다. 그때 공부하던 회원들은 이미 다 등단을 했거니 등단 직전에 있던 있었다. 김승옥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게 된 우리는 흥분한 상태였다. 그때 공부하던 텍스트가 선생님에게 크게 영향을 준 세계전후문학이었다. 우리는 예전에 나와 절판이 된 책을 제록스로 떠서 책을 묶었다. 다섯권이나 되는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중단편들을 읽어가며 그 속에 든 작가의 의도며 시대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해 강의하셨다. 다섯 번 자살 끝에 성공해 죽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을 공부할 때는 절정이었다. 고귀함 때문에 몰락해가는 아름다움을 마치 제목인 사양처럼 섬세하게 그려낸 사양을 한 줄 잘 줄 읽어가며 강의하셨다. 그 강의 시간에는 숨소리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열정을 다해 하셨던 강의는 두 달만에 끝났다. 선생님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갔을 때 사모님께서 '언어중추 신경'이 파괴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말씀해주셨다. 그후 몸은 예전 상태로 돌아왔지만 선생님은 말과 글을 잃으셨다. 운명은 소설가에게 말과 글을 빼앗아간 것이다.

그 후 선생님은 단편적인 글씨와 그림으로 소통을 했다. 여전히 사진찍기를 좋아하시고 카메라로 구도를 잡아 사진찍어 주는 것을 즐겨하셨다. 우리는 짧게 배웠지만 선생님의 영원한 제자가 되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가고 싶으셨는지 순천만 여정을 잡아놓으셨다. 순천만 대대동 물길을 배타고 돌아보고 그곳에서 짱뚱어탕을 먹고 흑두루니 팬션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 선암사와 낙안 읍성을 보고 다시 송광사를 돌아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 여정을 하루만에 어찌 소화 시키느냐는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선생님은 밀고 나가셨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것을 보며 선생님의 기획력과 추진력은 여전하시다며 모두 놀라워했다.

비록 말과 글은 빼앗겼지만 선생님의 감수성은 여전했다. 그 표현수단을 말과 글이 아니 그림으로 표현하셨을 뿐이다.

어제 선생님의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다. 선생님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70년대 문화를 선도하던 사람들이다. 그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바보들의 행진>을 찍은 배창호 감독도 뵈었다. 놀랍게도 우리와 비슷한 또래였다.

 

이미 전시회의 그림은 다 팔렸다고 했다. 계속 그리고 계시다고 하니 다음 전시회를 기다려봐야겠다.

출처 : 농사 일기
글쓴이 : 조선오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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