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 화백의 그림에 詩를 붙이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갑니다 아! 산다는 것
사는 일이 참 꿈만 같지요 살아오는 동안 당신은
늘 내 편이었습니다 내가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당신은
내 편이었지요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는데
이제, 어디에서 기다려도 그대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용택...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흰 꽃 곁을 그냥 지나쳤네 한참을 가다 생각하니
매화였다네 돌아가서 볼까 하다 그냥 가네
너는 지금도 거기 생생하게 피어있을지니
내 생의 한 때 환한 흔적이로다.
(김용택...生生)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나무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강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지면 나는 날마다 산에게로 걸어간다
해가 질 때 나무와 산과 강에게로 걸어가는 일은 아름답다
해가 질 때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산그늘처럼
걸어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다
(김용택...연애 1)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마종기...전화)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겨울같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창밖의 나무는 잠들고 형상의 눈은
헤매는 자의 뼈 속에 쌓인다
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썩어서 목마른 자의 술이 되게 하고
자라지 않는 사랑의 풀을 위해 어둡고 긴 내면의 길을
핥기 시작했다
(마종기...그림 그리기)
슬픔의 사랑스러움 예감의 사랑스러움
귓속에 가득차는 소리의 사랑스러움
발정의 사랑스러움
사원의 호수와 요리, 혹은 십년전 명륜동 목욕탕 수증기
종소리와 숲의 전경, 혹은 서울근교의 은행나무 이끼
정경의 아름다움 환청의 아름다움
밤늦게 끝까지 들리는 발정의 아름다움
(마종기...피아니스트 페라이어)
겨우내 돌보지 않던 뜰에서
튤립 줄기가 자란다
오래 잊고 지내던 여인이
싱싱한 풀향기로 내게 온다
(마종기...봄)
흰 배경으로 두마리 흰 새가 날아올랐다
새는 보이지 않고 날개 소리만 들렸다
너는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만
나도 보이지 않게 한 길로만 살고 싶었다
이 깊고 어려운 시절에는
말하지 않아도 귀는 듣고
서로 붙잡지 않아도 손은 젖는다
(마종기...피아니스트 폴리니 연주회)
내가 한 십 년
아무것도 안하고 단지 시만 읽고 쓴다면 즐겁겠지
내가 겨울이 긴 산속 통나무 집에서 장작이나 태우며
노래나 부른다면 즐겁겠지
당신에게 쌓이고 쌓인 모든 발걸음이
이제는 다만 아픈으로 남을지라도 즐겁겠지
십 년쯤 후에는 그 흙이 여물어
내가 만약 질 좋은 시인이 된다면
(마종기...내가 만약 시인이 된다면)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
'가족 > 개인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 Tarkus(1971) (0) | 2016.01.28 |
---|---|
[스크랩] 핑크 플로이드의 더월. 핑크 플로이드의 벽. Pink Floyd The Wall. 1982 (0) | 2016.01.27 |
[스크랩] 뭐냐 (0) | 2016.01.14 |
[스크랩] `조선의 3대 구라` ① 백기완 ② 방동규 ③ 황석영 (0) | 2016.01.14 |
[스크랩] 정호승과 안치환 북 앤드 뮤직콘서트4 (0) | 2016.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