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나의 이야기

[스크랩] 부용산 - 안치환

한적한길 2013. 10. 16. 14:57

 

 

 

부용산 - 안치환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홀로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홀로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의 ‘부용산’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작사자가 1947년경에 폐결핵으로 죽은 어린 누이동생을 부용산에 묻고 나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작곡자 안성현이 해방 후에 월북을 하고, 후에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부용산’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 노래는 남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구전가요 이였습니다

근래 들어 가수 이동원, 안치환, 한영애 같은 이들이 음반을 내면서 빛을 보게 되였습니다

 

이 부용산이라는 노래가 빨치산이 부르는 노래라는 데는 이견이 있다
다만 그 시대 남도의 사람들이 빨치산들에 의해 많이 끌려가 본의아니게 빨치산이 되였고

 

그 시대 지식인인 핵심 빨치산들중에서도 남도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그런 연고로 이 남도의 노래가 그들의 정서를 자극하는고로 그 사람들이 많이 불렀을 것이라 사료된다

 

 
내 고향은 비취빛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여수이다
바다 건너 아름다운 남해와 바로 앞에는 나의 어릴쩍 모험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돌산도가 아름답게 펼쳐 있다
내가 지은 시에도 이곳의 아름다움이 몇몇 소개되여 있는데
남도의 슬픈 서정이 짙게 깔린 이 시 부용산을 읽고 박기동선생이 왜 돌산이 고향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 시의 주인공인 박기동 선생의 누이동생인 박영애씨와 거의 동년배인 밀양 박씨인 내 모친(1925년생)의 고향이 돌산도 둔전리인데 그곳에는 밀양 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항렬로 볼때 박기동선생은 모친과 같은 항렬로 보이며 이곳 박씨 집성촌은 예로부터 향학열이 높기로 유명하며 그 당시 이곳에 사시던 내 외조부께서도 일제시대 전문학교를 졸업하실 정도였다

내 어릴적 돌산대교가 생기기전에는 통통배로 건너 다녔었는데

그때도 뻐쓰가 섬안에서 운행 될 정도로 가까우면서도 먼 서정이 짙게 깔린 그런 커다란 섬 이였다(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큰 섬)

이섬에 태여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아름답고 아름다운 섬이다

 

                                         청산산인 

 
 아래는 펌한 것임
박기동선생 약력

▷  1917 년 11 월 28 일 여수군 돌산면 둔전리 517 번지 출생. (박준태의 3 남 2 녀중 장남) 

▷  1929 년 (12 세) 초등학교 4학년때 돌산에서 벌교 보통학교 4학년으로 전학.           

▷  1931 년 (14 세)  벌교 보통학교 (현 벌교남초등학교) 6회 졸업.
                    벌교에서 초등학교 졸업후 일본으로 건너가 중, 대학을 일본에서 학업을 마침.
▷1943 년  (26 세) 일본관서대학 영문학과 졸업후 귀국후 벌교에서 생활.
▷ 1943 년 10월  벌교남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 1943 년 10월 ~1946년 1월 31일까지 3년 9개월동안 벌교남초등학교 재직.

▷ 1944 년  (27 세) 벌교초등학교에 부임. 교가 작사
▷ 1946 년 2월 1일 (29 세) 광주 서석초등학교 발령.
▷  1946 년 2월 1일 ~ 1946년 11월 14일 광주 서석초등학교 재직.
▷  1946 년 11월 15일 벌교공립초급 중학교 발령 (현 벌교상업고등학교) . 국어 영어 교사
▷  1946 년 2월 1일 1947년 3월 31일 벌교공립 초급중학교 재직. 교가 작사
▷  1947 년 4월 1일 (30세)  순천 사범학교 재직.

           - [남조선 교육자 협회] 가입이 문제가 되어 순천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받고 , 6개월 정직처분
▷ 1947 년  9월 6일 누이 박영애가 폐결핵으로 순천도립병원에서 사망.

▷ 1947 년  9월 8일 누이 박영애를 벌교 부용산(절산)에 장사지냄.  집에 와서 부용산 을 씀

▷1948 년 2월  (31 세) 목포 항도여중 전근 (교장 조희관. 현 목포여자고등학교)

          - 천재 문학 소녀 김정희(     )와  음악교사  안성현(1920.- )을 만남 
▷  1948 년 10월 10일  김정희 사망 . 안성현교사가  부용산시에 곡을 붙임.

▷ 1950 년 (33 세) 광주 동중 에서 교편  

▷  1950 년 5월 문행자와 결혼

▷  1951년 (34 세) 아들 출생 ( 현재  치과의사) 

▷ 1953 년 군산 해운말 근무

▷  1957년 (40 세) 목포 사범학교에서 국어교사 교편 (마지막)

▷  1961 년 (44세) 서울 의 출판사에서 번역일  근무 - 일본소설 '빙점'등  번역

▷  1982 년 (65 세) 부인 문행자 작고(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

▷  1993 년  (76세) 호주 이민 (단신)

       - 생식과 요가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며,  그리스 신화에 관한 글을 정리하고, 시와 수필등을 집필

▷  1997 년 (80 세) 안치환이 부용산 노래 취입 (구전 가요)

▷  1998 년  (81세) 박기동의 제자  김효자 교수가 부용산 노래 악보 원본을 제보

▷  1998 년  5 월 29 일  목포에서 부용산 음악회 개최

▷  1998 년 6 월 26일  벌교에서  부용산 음악 발표회 개최 

▷  1999 년 9 월  벌교 부용산에 노래기념비 및 기념누각  건립

▷  1998 년 연극인 김성옥(목포출신)의 요청에 의거 시드니에서  부용산 가사 2절을 완성

▷  1999 년 (82 세)보성공연예술촌'연바람' (대표 오성환)이 공주 전국향토연극제에서 부용산 연극 공연

▷  1999 년 목포에서  부용산 살롱음악회 개최

▷  2000 년 (83 세)보성공연예술촌'연바람'이  제4회 벌교 꼬막축제 마지막날 (6일) 부용산 연극 공연

▷  2002 년 벌교 부용산 오리길 노래비 방문 (54년 만에 벌교 부용산 동생 묘 방문)

▷  2002 년 4 월 24 일  목포여고 교정에  노래비 세움 

▷  2002 년  5월 20 일 (85 세) 목포에서 부용산  (박기동 산문집) 발간 출판기념회 - 잠시 귀국

▷  2003 년 (86세) 영구 귀국 .아들(치과의사) 과 함께  거주 - 뇌경색으로 병원 치료

▷  2004 년 5월 9 일 (87 세) 별세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내 부인과 합장

 

 

부용산 사연의 주인공 故 박 영애



▷ 1923년 4월 30일 출생    (3남 2녀중 2녀)  

▷ 1941년 (18세) 벌교 세망동으로 시집 감
▷ 1947년 9월 6일 (24세)  순천도립병원에서 사망, 벌교 부용산에 안장.

 

 

안성현

▷  1920 년 나주 남평에서 출생

▷   함경도 함흥에서 성장

▷   일본 도꾜 동방응악대학교  성악부 졸업

▷   목포항도여중 교편  (음악교사) 

     - 광주 사범대학교

     - 조선대학교

     - 전남여고

♡   성동월과 결혼 (1남 1녀를 둠) - 남한에서 살고 있음

▷   1950 년 최승희 따라 월북 (안성현은 최승희 남편 안 막 의 조카임)

▷   작곡집 1집 (11곡 )

▷  작곡집 2집 (23 곡) - 처조카 성경래씨(광주 북구 연제동) 가 발굴

▷ 작곡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시)

  - 부용산 (박기동 시)

  - 낙엽 (안성현 시)

  - 앞날의 꿈 (조희관 시)

  - 진달래 (박기동 시)

  - 내고향 (조희관 시)

 ▶ 2006. 4. 25  오후 3시에 노환으로 평양에서 별세 (86세)

 

 

 

 

김정희

▷  1931. 10. 1 - 1948. 10.10  (18세. 항도여중 3학년 때 사망)

 

노래관련한  행사 등 일지

▷  1947    작사  (박기동) - 동생 박영애 사망으로 슬픔을 시로 씀
▷  1948   작곡  (안성현)  - 항도여중 김정희의 요절로 제자 잃은 슬픔을 박기동선생의 시에 곡을 붙임

▷  1950   안성현  처 삼촌 안막 , 안막의 부인 최승희 와 월북

▷  1993  박기동 시인 호주 이민

▷  1997  안치환 이 구전가요를  음반으로 취입 - 세상에 알려짐

▷  1998. 3.28.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정설'부용산' 에세이를 씀

▷  1998  박기동 선생의 제자인 김효자 경기대 교수가 악보를 제보

▷  1998. 5. 29 목포에서 부용산음악회 개최

▷  1998. 6. 1.  최성각(소설가)시가  단편소설 '부용산' 발표

▷  1998. 6. 26 벌교에서 부용산음악 발표회 개최

▷  1998  연극인 김성옥(목포출신) 의 요청에 의해 박기동 선생이 시드니에서 3일만에 2절 작시

▷  1999.  9  벌교 부용산에 부용산노래기념비및 기념 누각 건립

▷  1999  보성공연애술촌'연바람' (대표 오성환) 이 공주 전국향도연극제에서 부용산연극 공연

▷  1999  목포에서 부용산 살롱음악회 개최

▷  2000  보성공연예술촌'연바람'이 벌교꼬막축제 마직막날(6일)  부용산 연극 공연

▷  2002  박기동 시인 벌교 노래비 방문 .

▷  2002 . 4. 24. 목포 여고 (구 항도 여중) 교정에 부용산 노래비 세움.

▷  2002.  5. 10.  박기동   산문집'부용산' 출판

▷  2002.  5. 28  연합뉴스, 경향신문에 박기동 시인 인터뷰 기사.

▷  2002.  6.  3.  목포에서 부용산 수필집 출판기념회 개최  - 6. 8 호주로 출국

▷  2003   박기동 시인 시드니에서 영구 귀국 장남과 거주 - 병원에서 퇴경색 치료

▷  2004. 2.12. 나천수 시인 (나주 향토사학자) 부용산 시 발표.

▷  2004. 7. 1.  KBS 라디오에서 최성환(목포 신안 향토사학자) 진행으로 서해안인물열전에서

                       박기동시인을 소개

▷  2004. 5. 9 . 박기동 시인 별세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부인옆에 안장

▷  2005.11. 7 . 전남일보 김용재 기자가  타계한 '부용산' 작사 박기동옹 기사 작성

▷  2006. 4.25  안성현 작곡가  평양에서 별세

 


노래 부용산은 1947년 당시 목포 항도여중의 교사였던 박기동씨가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에
함께 교사로 재직하던 안성현(동요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이 1948년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노래 부용산은 2000년 10월 1일 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불려지며 아름다운 노래말과 애절한 곡조로 사랑받아 오다가
50여년 만에 전남 보성군 벌교읍 부용산 오리길에 노래비로 부활했는데
이날 제막식에는 노랫말을 쓴 시인 박기동님과
작곡가 안성현님의 미망인이 함께 했다고 합니다.


 
출처 : 인정이 묻어나는 곳
글쓴이 : 이쁜아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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