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나의 이야기

[스크랩] 노쉰 산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를 읽고

한적한길 2019. 1. 16. 17:57

거름 혹은 태양같은 지식인

- 노쉰,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를 읽고

 

혹시 자신을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믿음직스러울지도 모른다. 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생존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할 것인가!

 

어느날 밤, 그는 내가 베낀 옛 비문의 초본을 펼쳐보며 궁금한 듯이 물었다.

"자네 이런 건 베껴서 뭐하려고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지."

"그럼 뭐하러 베끼나?"

"아무 이유도 없어."

"내 생각엔 말야. 자네가 글을 좀 써보는 게 어떨까 싶어......"

나는 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신청년>이란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엔 특별히 찬성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필시 그들도 아마 적막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그 불행한 몇 사람들이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그에게 쓰겠다고 응답했다. 이것이 처녀작인 <광인일기>이다.

- 노쉰,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중에서  

 

 

작년 생일에 회사 동료였던 아샤 예비 형수님(9월 15일 결혼 예정 우왓 한달도 한남았군. ㅋㅋ)께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은 책이다. 물론 노쉰의 아무 책이나 좋다고 해서 받았지만 만만하지 않는 가격과 두께에 산문집 같은 것을 원했지만 마침 원하는 구절이 들어간 (위의 인용한 구절들 같은) 책이라 고맙게 받았다. 그런데 이것저것 책읽을 것이 많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년만에 안읽고 처박아 둔 책들을 찾아내다 이틀 정도 읽어내려가고 있다.

 

1920~30년대 청말의 혼돈의 시기,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하는 무지몽매한 중국인들을 일깨워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지식인 노쉰, 나는 그를 사회운동가라기 보다는 아큐정전의 작가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김구 안중근 윤봉길은 있지만 이광수와 서정주밖에 없는 한국 문단의 초라한 모습은 저항 문학이라든지를 대표한 지식인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카프 동맹의 문인들과 동반자 문학의 작가들이 있기는 했지만 노쉰의 위상과 비견할만한 문인은 아무래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재와 벽초 백암 석농 등이 있다지만 아무래도 노쉰과는 딱맞아떨어지지 않는 부족감이 드니까 말이다.

 

신해혁명과 본격적인 근대화의 수렁에서 고통받는 일반 민중을 위해 중국 사회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청년 정신으로 살았다. 청년을 위해서는 기꺼이 거름이 되고 자기를 딛고 오르도록 디딤돌이라도 될 각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을 잊은 듯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는 태양처럼 그가 써내려간 많은 글들은 스승을 찾게 만들고 그 스승에게 갈 길을 묻고자 한다. 그러나 너절한 스승 따위를 찾아 추켜세우는 짓을 하지 말고 무엇이든 청년 정신으로 개척하라고 말하는 노쉰, 청년기의 부족함과 어리숙함보다 청년기의 열정과 패기에 더 주목할 줄 알았던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적막감을 희망을 가지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로 청년기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청년기에 칼이나 총보다는 붓을 드는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바꾸고 일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청년들이기를 기대했고 자신의 글들도 그렇게 새로운 사회 건설의 불쏘시개 정도로 사용되기를 원했던 노쉰.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으나 어설픈 개혁세력으로 인해 한발자욱도 제대로 진보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노무현 정권의 5년 개혁세력은 진보진영까지 싸잡아 매도당하게 하며 무기력하고 진보진영의 많은 청년들은 이러한 악화된 여론 앞에서 정말 우리는 안 되는 걸까? 적막감을 느끼고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휩싸이게 되었다. 마치 위의 인용한 구절에서 옛비문이나 베끼면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내가 알게 뭐야이거나 자기의 운명과 공동체의 운명을 한번도 마주대어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무기력하게 늙어만 가는 것이다.

 

그저 먹고사는 걱정만 없으면 장땡이라는 군중심리를 이용해 사회진보고 나발이고 경제를 부강시키고 세계 7위 경제국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으니 나를 뽑아달라고 외치는 목소리의 진위 여부조차 헤아려 듣기 어려운 무기력한 서민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청년들. 왜 경제발전보다 사회의 균형적 발전과 화해와 단결이 중요한지, 가진자의 관용과 못가진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증가가 왜 중요한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오직 자기 밥그릇만 챙기느라 옆에서 누가 굶어죽든 총에 맞아 죽든, 불을 지르고 칼로 찌르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든. 오직 자기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보장되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의 삶의 비좁은 상상력을 좀더 발전시켜나갈 의무, 시민 사회의 성숙,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이 군사무기에 쏟아붓는 돈으로 좀더 복지나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나갈 의무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했던 노쉰.

 

그는 철로 된 방앞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순간 좌절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안 된다고 깨어난 자들이라도 불러서 우선 철로 된 방을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노쉰의 모습을 보니 자꾸 현실의 검은 울타리 안에서 질식하지만 한번도 그 울타리 밖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사는 나 자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저 편안히 늙어죽는 소시민으로서의 안락함과 타협하려는 부끄러운 나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데 빤하게 부정적 결말을 알고도 그들을 깨우려는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깨어날 의사가 없으니 다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에 찌든다면, 그냥 잠들어 죽게하는 것이 깨어나서 비극적인 결말의 고통을 느끼며 죽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궤변에 설득당한다면 우리 사회는 영 희망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이미 일년 전에 나에게 전해진 깨달음을 내가 미처 그 가치를 모르다가 일년이 지난 후에야 그 귀함을 인정하듯이 우리의 삶이란 역시 늦었다고 생각해서 바꾸려고 시도하는 바로 그 때, 아프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병마와 싸워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 내가 지금까지 맹인이나 귀머거리처럼 살았으나 이제 눈을 열고 귀를 열어야하겠다고 마음먹는 그 때, 바로 그 때엔 우리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온갖 법과 제도와 틀과 규범과 관습과 형식이 구속할지라도 인간의 이러한 참된 삶의 의지와 그러한 참된 사회의 구현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방치해서는 안 되며 과감히 뚫고 전진해 나아가기를 기대했던 노쉰은 이 책에서 그 따뜻한 격려이자, 조언으로 때로는 가슴이 후들거리는 질책과 비판으로 2007년의 오늘 대선 정국을 앞두고 조국 통일의 기회를 맞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똑같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쉰선생은 이 산문들을 청말의 중국 사회를 중심으로 쓰고 있고, 우리와 별개로 생각되는 산문들이 몇개 있어 별 다섯개를 다 주어야 하지만 네개 반 주고 싶다.

출처 : 6.15공동선언 이행
글쓴이 : 나와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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