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개인글

[스크랩] 인파이터 / 이장욱

한적한길 2016. 10. 22. 23:06

내 얘기가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난 정말 불쌍한 소년이에요.
차마 거절하지 못했어요.
한몫 잡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에 넘어간 거지요.
모두 거짓과 놀림이었어요.
사람이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흘려버리게 되잖아요.

고향집과 가족 곁을 떠난 뒤로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리숙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어요.
두려움을 안고 한적한 기차역 주위를 배회했어요.
움츠러든 채 빈민가를 기웃거렸지요.
남루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그런 부류나 알고 있을 그런 곳을 찾아서 말이에요.


그저 날품팔이라도 하려고
일거리를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창녀들이 손짓하는 7번가 말고는 반기는 데가 없었어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못 견디게 외로울 때는
거기서 위안을 얻기도 했지요.

겨울옷을 정리하다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뉴욕의 겨울만큼 혹독하지 않은 고향집으로
날 데려다 줬으면 하는 거지요.

한명의 복서가 링 위에 덩그러니 서 있어요.
싸우는게 그의 직업이지요.

늘 글러브에 얻어맞고 쓰러지고 하면서 흉터를 달고 다녀요.
분노와 수치심에 떨며 벗어나려고 울부짖곤 해요.
"그만둘 거야, 그만둘 거야"

하지만 여전히 남아서 경기를 하지요.



1960년 대에 쿠바출신 권투선수 Benny Perat는 어느날 시합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은 권투

경기의 위험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여러가지 어려운 직업에 종사하며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New York을 비롯한 대도시 빈민계층의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저는 노래의 소재를 구하기 위해 때때로 멍하니 New York시의

한쪽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합니다. 그들

의 다양한 생활 저변에 깔려있는 행복, 불행, 기쁨, 슬픔... 이런 것

들을 노래에 담아 보려하지요." -Paul Simon


“탐색전도 없이 김득구가 바로 나의 턱을 가격하고 들어왔다. 나도 ‘그래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라운드 초반에 3연타를 성공시켰는데, 그때 김득구가 나를 밀어낸 뒤 끄떡도 안 한다는 듯 두 팔을 흔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순간적으로 난 공포를 느꼈다. 매 라운드 내가 압도하다가도 김득구가 곧바로 반격해 들어왔다. 내 복싱 인생에서 경기 중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그때가 유일했다. 트레이너가 내게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겠다’는 말을 했다. 무조건 KO 시키라는 뜻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금도 후회한다.”

 - 레이 맨시니 -  (고 김득구 파터너)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비어버리는/여긴 또 어디?(…)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다시는 카운트 펀치 날릴 수 없지./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구름의 것은 구름에게./나는 지치지 않는/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이장욱 시인의 '인파이터' 부분


출처 : 오자기일기
글쓴이 : 난자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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