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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는 조계종의 내일이 두렵습니다" - 현진스님(여의도포교원장)

한적한길 2016. 3. 17. 10:05
2015년 08월 17일 (월) 15:24:55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금은보화 佛이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기둥 佛이 불길을 건너지 못하고
진흙덩이 佛이 물길을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心佛(심불)은 세상과 우주를 건너다”라는 조사의 수행 가르침은 우리 승가의 삼세(三世)의 본분사 일진데….

마음부처 찾는 일은 내팽개치고, 붓다의 심지는 탐욕과 부정의 용광로 되어 불구멍 속에 침잠된, 조계종 승가의 정체된 목전의 상황이 심히 무섭고 파멸일까 두렵습니다.

오백년 조선의 비불(非佛, 배불) 에서 근대 한국불교가 소멸의 위기일 때 분연히 일어나 목숨 걸고 지켜내신 역사속의 선사들에 대한 사망 같은 정신적 파멸을 보이는 파승가의 오늘이 너무도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침묵하는 승가여! 사부대중 행자여!

침묵만이 아름다운 수행 고고한 아라한의 자리가 아닙니다. 조계종의 내밀한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불심을 엮어가고 아파하는 대중을 안아야 할 우리 승가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두 눈 크게 뜨고 보십시오. 붓다의 소리, 담마(Dharma)의 소리가 있는지요?

둑카(dukkha, 고뇌 번뇌)를 수행하는 승가 본연의 사투는 없고 권력만이 숨 쉬는 비승가적 사투에서 등급을 나누어 주지를 사고파는 일은 이미 예사로운 일이 되고 취처, 은처가 집행부 권좌에서 종도를 속이고 다수의 승가를 희롱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는 파사현정의 종립대학은 신앙의 대상인 불화를 절도한 혐의자가 이사장이 되고, 범계와 도박의혹에 대한 옳고 그름을 사회 법정에서 시비를 가려가는 이 승가의 얼굴에서 담마의 소리와 빛을 찾아내기는 이제 요원한 지경입니다.

붓다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승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염치마저 잃어버린 승가. 오호 통제라!
누구 한 번 소리쳐 보시오.

조계종 담마의 승가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포살(Posadha)에 자자(自恣)을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고백하는 수행을 통해 붓다의 면목을 보는 일이요, 대중을 위해 현현하는 것 아닙니까?

만해 한용운 스님이 존경받는 것은 왜 일까요.
“나는 장가가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했지만 붓다의 세계에서 대중과 함께 사는 진실의 담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은처의 비굴함보다 차라리 애처의 사랑이 아름답고 사람답지 않소.
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이 복면승(覆面僧)으로 숨겨진 검은 얼굴. 거짓이 가득한 승가가 어찌 대중의 존경 속에 거룩한 존재가 있겠소이까!

“혼자서 아라한트(阿羅漢 arhant)가 된다고 해도 그것이 쓰임이 없을 때는 아무런 할 일이 없으리라” 하고 일어난 대중운동이 마하야나(Mahayana, 대승)의 동력이 아닙니까?

부딪쳐서 파멸되는 조각배의 파편 같은 아픔이 오늘의 조계종 승가인 것 같아, 오늘도 두렵고 내일도 두렵습니다.

가사와 붓다의 옷을 입고 밥을 빌고 있기에 부끄러운 눈물 방울방울 맺히는 승가여!
침묵, 고고한 침묵만 수행치 말고 우리의 열반을 위하여….

누구 뭐라고 한번 외쳐보십시오. 승가는 이렇다고!
누구 뭐라고 한번 외쳐보십시오. 담마가 이렇다고!

정말, 나는 조계종의 내일이 두렵습니다.

/ 현진 스님. 여의도포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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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력회(佛力會)
글쓴이 : 德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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