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가엔 무수히 많은 걸개그림들이 우렁차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그 걸개그림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지금에 와서 눈을 감고 추억하면 오랜 시간을 헤집고 눈물이 제 먼저 흘러나옵니다.
‘민족해방운동사’ 中 광주민중항쟁. 민족해방운동사는 세로 2.5m, 가로 7m의 그림 11폭으로 이루어진 대형 걸개그림으로 동학농민혁명, 일제침탈, 한국전쟁, 5·18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 근현대사의 사건을 80여명의 작가들이 11개의 테마로 그린 대작이다.
1989년 홍성담씨는 이 그림을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냈다. 원작품은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던 집회에 내걸렸다가 경찰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렇지만...
80년대 그 당시의 저에겐 그 걸개그림들이 그렇게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버스의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길 위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죠.
주변에서 늘 함께 하고 있는 그 그림들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저 그렇고 그런 일이었을 뿐이니까요.
아니 조금 더 쫀쫀하게 따져보자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흉물스럽다는 느낌 쪽에 가까웠을 겁니다.
왜냐하면 걸개그림들은 너무나 명확한 소리로 투쟁을 외치고 있었고 그 외침은 과격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어찌나 과격하든지...그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먹으로 말하는 이들이 ‘맞고 줄래, 주고 맞을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달리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그림들이었거든요.
1988년 전남대학교 미술패'마당' 作, ‘오월에서 통일로’
그러한 오해의 불식은 동양화의 구륵기법을 빼어 닮은 또렷한 윤곽선에서 시작되고 있었죠.
80년대 걸개그림의 ‘구륵’은 명확한 사상과 선명한 표현력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물인지 술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하는 사람들도 걸개그림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는 다 알 수가 있었습니다.
경계가 흐리멍덩한 2mb식 사고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어눌한 2mb식 발성법과는 180도 다른 세계가 그 그림 속에 펼쳐져 있었다고나 할까...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었죠.
걸개그림의 붓놀림은 투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주먹표 포스가 느껴질 정도로 우락부락한 것이 탐미적인 여타의 그림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제가 아주 혐오하는 화가 얘기를 해볼까요?
노먼 로크웰(Norman Rockwell)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의 유명화가 노먼 로크웰(1894~1978)입니다.
노먼 로크웰은 결핍의 시대를 풍요와 낭만이 넘실대는 시대로 그려내는 재주가 너무나도 탁월했던 작가죠.
어찌나 포장을 아름답게 잘 하든지...모르긴 몰라도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라고 말하는 2mb의 입맛에 아주 딱 맞는 화가일 겁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제대로 재수가 없는 화가란 얘기죠.
그건 그렇고 아무튼 80년대 걸개그림에서는 노먼 로크웰의 그림에서 보이는 그따위 가식적인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용케도 얘기가 제 자리로 잘 돌아왔네요. ^^;)
까칠하다 못해 너덜거리는 삶의 편린들이 덕지덕지 더께 앉은 모습이 그대로 까발려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말라비틀어진 아름다움을 논한단 말입니까.
욕지거리나 뱉어내지 않으면 다행이죠.
삐져나오는 욕 대신 한숨을 토해내고 돌아서면 입 앙다물고 투쟁을 다짐하게 되곤 했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어져서 살면 그만일 것을 왜 힘들게 투쟁하면서 사느냐구요?
하지만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쓰러지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면 무게 중심을 잡아야만 하죠.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게 될 경우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을 뒤쪽으로 젖히는 힘을 가해 줘야만 한다는 건데요, 이렇게 적절한 힘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 삶의 투쟁방식이라는 얘깁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80년대 걸개그림에서 돋보이던 오방색을 얘기해 볼까요?
조선대학교 사학민주화투쟁과 깃발,1987
오방색은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을 말하는 것으로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으로 대표됩니다.
뜬금없이 웬 방위 타령이냐구요?
하지만 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방향감각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지가 오히려 의문입니다.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더욱이나 필요하구 말구요.
세계를 향해 뻗어가야 할 우리가 방향감각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야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나 있을까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동서남북 그 어디건 간에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 한국이 그 중심이고 출발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미래에 살고 있는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중심에 서서 꼼짝 말고 차렷하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라는 거 아시죠?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곳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도 잃게 됩니다.
그러니 투쟁만이 살아가는 방법일 수밖에요.
말이 과격해서 그렇지 우리 몸속의 세포 하나 피 한 방울도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법이죠.
그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업보라면 업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업보 때문에 80년대의 그 수많은 걸개그림들이 삶의 현장에서 펄럭이고 있었던 거죠.
현장에서 예술로 태어나고 다시 그 예술은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어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눈을 감고 그 시절을 추억하면 눈물 먼저 흘리게 되는 이유는 그토록 아름답게 소통하던 시대가 고스란히 걸개그림들의 장면으로 남아 전해져 오기 때문입니다.
최병수 作, ‘한열이를살려내라’
80년대의 대학은 우아하게 학문만을 탐하던 상아탑(기독교적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이 말을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답니다)은 아니었습니다.
독재와 외세에 저항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삶의 현장이었죠.
현장...이 말에는 죽음마저 초월하게 하는 삶의 무게가 담겨져 있었고, 그 당시 우리 대학생들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순간의 삶 속에서 우리의 현장이 유기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의 죽음이 하나의 생명으로 부활하는 무섭도록 장엄한 삶의 고리를 빠져나갈 재간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현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움으로써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요.
80년대 대학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생동하는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건...그 당시 대학생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삶과 소통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2008년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될 차례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젊음을 응원할게요. 힘 내세요! ^^
뱀발: 이 암울한 시대와 소통하는 걸개그림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미대생 여러분! 여러분의 2008년식 걸개그림이 보고파요. 네? ^^
그리고 이건 정말 사족이고, 여담이지만 전 검정색을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검정색은 이 세상의 모든 빛깔을 아우른 색이죠. 그러니 그 무한한 포용의 빛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검정은 우주의 빛이기도 하고, 생명을 잉태한 자궁의 빛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지식의 토대인 문자를 상징하는 먹빛이기도 합니다. 물론 죽음과도 같은 무덤의 빛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이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또다른 생명의 탄생을 약속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검정색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