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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m 세월호 걸개그림, 1박2일 동안 같이 그려요 |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시민캠프, 18일 합동분향소 앞마당에서 24시간 동안 진행 |
“지겹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자식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습니까?”
안산 도심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세월호 현수막 문구 중 하나다. 서울 자양동 주부의 이름으로 걸린 현수막은 참사 180일을 맞는 대한민국에 되묻는다. 자식의 죽음을 조롱하고, 매도하며, 쉬이 잊는 부모가 대명천지에 어디 있느냐고. 이렇게 안산의 가을은 전국 각지에서 무명씨들이 신청한 현수막으로 ‘노랗게’ 깊어져 가고 있다.
합동분향소 풍경도 달라졌다. 분향소 출구에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엄마아빠! 제주 수학여행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걸개그림은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제주여행을 형상화했다. 지천에 노랗게 만개한 유채꽃 위에서 아이들은 유랑의 섬 제주를 여행한다. 그리고 만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운 채, 되묻는다. ‘사랑한다’고, ‘잊지 말아 달라’고.
분향소를 나서면 세월호 유가족 카메라로 0416을 기록한 ‘슬픔을 딛고 진실을 찾다’ 사진전이 기다린다. 전시는 유가족이 진도 팽목항에서 목격한 그날의 현장,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과 도보행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던 교황과의 만남, 광화문 광장의 단식에 이은 청와대 앞 노숙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전시의 마지막은 유가족의 마음을 담은 ‘국민여러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이다.
그 곁에선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사진기록단 소속 작가들이 기록한 세월호 참사 사진전 ‘잊지 말아요 4·16’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4·16 참사 희생 학생 사진전 ‘하늘로 간 수학여행’이 그 앞에 설치되어 있다. 학생 사진전은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단원고에서 출발해 구명조끼를 입기까지, 아이들이 휴대폰에 남긴 마지막 모습을 시간 순으로 전시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안산시민 고맙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합동분향소 앞마당에서 10월 18일 정오부터 19일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안산시민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프’가 열린다. 이번 캠프는 지난 7월 4일부터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를 전시해 온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가 유가족과 함께 기획했다. 그에게서 이번 캠프를 준비하게 된 속내를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은 시민들의 희생과 도움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런 안산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자리가 없었다. 이번 가족캠프를 통해 안산시민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캠프 제목을 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캠프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 대표는 “이번에 ‘안산시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유가족들이 ‘저희는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합동분향소가 유지되면서 시민들에게 부담스러운 공간이 됐을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1박2일의 내용을 함께 채우기 위해서는 한 두 시간의 집회나 공연으로는 채울 수 없어 1박2일의 담론 형태로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캠프를 맞는 유가족의 입장은 어떨까. 단원고 김동혁군의 엄마 김성실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사람들이 계속 잊자며 눈물을 닦으라고 한다. 눈물을 닦으면 우리는 고립되고, 아이들 죽음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비록 상중의 문화행사지만 국민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소통해야 작은 변화가 시작되어 세월호가 잊혀지지 않고, 다시 진상규명을 위한 힘이 모아진다고 생각한다.”
페트병으로 세월호 만들고, 분향소 외벽에 240m 걸개그림도
1박2일 캠프는 참가자들이 유가족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합동분향소 외벽 걸개그림그리기, 페트병으로 하늘을 나는 세월호 만들기, ‘꿈마을’ 모델하우스, ‘우리 아이들의 꿈’과 ‘우리 이렇게 지냈어요’ 전시회, 풍등 날리기, 아이디어 경연대회, 각종 공연과 영화 관람 등이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이들 프로그램 중 취향에 맞는 작업을 선택해 참여하면 된다. 단, 개인 텐트와 삼시 세 끼를 해결할 간단한 취사도구를 준비해 와야 한다(문의 세월호 안산시민대책위 031-486-5105).
1박2일 캠프 프로그램 중에는 분향소 외벽 걸개그림그리기, 페트병으로 세월호 만들기와 같이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있다(페트병 세월호를 만들기 위해서는 삼다수 2리터 페트병만 가능하다). 하루 이틀 사이에 완성하기에는 숨이 차 보인다. “캠프 기간 동안 완성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는다”던 장 대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걸개그림그리기는 분향소를 한 바퀴 도는 240m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밑그림 등 사전 작업을 13일부터 시작한 후 18일에 시민들이 참여해 완성하는 퍼포먼스다. 페트병 세월호는 페트병에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넣어 세월호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페트병 1만개로 높이 8m에 이르는 세월호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하다.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라 제때에 완성이 될지 모르지만, 캠프 기간에 완성이 안 되면 왜 안 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런 말들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을 모아 끈질기게 작업하면 언젠가는 꼭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1박2일 캠프의 제목으로 잡은 ‘안산시민 고맙습니다’는 그 대상이 비단 안산시민만이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의 격랑 속에서 유가족들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슬픔과 고통과 속죄를 되새김질한 이 땅의 시민들을 향한 감사의 인사다. 그렇기에 이 인사에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의 진심어린 마음도 녹아있다. 장영승 대표가 대신한 감사의 인사말이다.
“시민들께서 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감내해 왔고, 특히 상인들은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생활을 꾸려오셨다. 그럼에도 이 어려움과 고통은 모두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박2일의 캠프 기간에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더라도, 또 날이 추워진다 해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의 힘으로 다시금 성큼 성큼 걸어갔으면 한다. 많은 시민들이 18일에 분향소를 찾아 주시길 당부 드린다.”
합동분향소 하늘에 띄운 애드벌룬 ‘그냥 덮을까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서울 전시회가 끝난 ‘박예슬 전시회’를 합동분향소 옆에 자리한 경기도미술관에서 18일부터 무기한 전시한다고 알렸다. 대신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하용별 이야기)를 10월 11일부터 서촌갤러리에서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전했다. 이번에도 무기한 전시다. 도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예슬 전시회’에는 하용군 작품 일부도 전시하며, 단원고 임세희양과 다른 학생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청명한 가을하늘, 그 한 귀퉁이 놓인 합동분향소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있다. 지난 7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등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애드벌룬을 하늘에 올렸다. 애드벌룬에 매단 펼침막에는 세월호를 형상화한 영문자 ‘KOREA(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모습과 함께 아래위로 “그냥 덮을까요?”, “다음 순서는 당신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애드벌룬은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땅에서 그 별을 바라보는 엄마아빠를 이어주는 ‘작은 행성’이다. 작은 행성은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아이들과 분향소 앞 천막에 옹기종기 모인 엄마아빠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이기도 하다. 그 수호천사가 하늘위에서 이 땅을 향해 연신 되묻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그냥 덮으면, 다음 순서는 당신이 된답니다. 아직,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하고 있으세요? 기억하고 있다면, 합동분향소로 다시 발길을 돌려주세요. 단원고 아이들과 엄마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