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나 보던 오윤의 작품을 ‘현실과 발언 30년 - 사회적 현실과 미술적 현실’ 전시회에서 봤습니다. 워낙 큰 전시에서 다른 것들도 볼 것이 많았지만 저의 편협한(?) 취향 때문인지 오윤의 작품 앞에서 시간을 다 보내 다른 것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오윤, [애비]
오윤, [칼노래]
오윤하면 떠오르는 것 하나는 ‘힘’입니다. [칼노래] 같은 작품에서처럼 정말 단칼에 가난이고 독재고 베어 버릴 것 같습니다. 또 오윤의 힘은 작품의 주제뿐만 아니라 작품의 겉모습에서도 느껴집니다. 사람의 몸이나 선 하나를 그려도 그 속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오윤, [검은새]
사회 문제를 주로 다뤘기 때문에 힘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냐구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무와 새, 강과 땅을 그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앞에 서 있었던 작품도 강물을 그린 작품이었구요.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들만 휙휙 그렸는데도 작품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립니다.
요즘처럼 무언가 예쁘게 그리거나 알 듯 모를 듯 애매하게 그리는 것이 대접 받는 세상에서 오윤의 작품을 ‘그 때 그 시절’의 작품 정도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요.
류연복, [봄]
과거 민중미술을 하던 여러 작가들이 이제는 인간과 동떨어진 자연이나 자신의 내면으로만 점점 들어가고, 정의와 자유를 찾던 눈은 삶의 여유로움과 휴식을 찾을 때, 바로 이 때 더더욱 오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자연과 내면을 바라보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내면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것이냐도 문제겠지요.
또 한 때는 그렇게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던 등굽은 무지랭이들을 너무 쉽게 잊는 것은 아닌가도 싶구요.
미술이 우아하신 분들의 그럴싸한 놀이나 치장꺼리 그치지 않고 인간과 사회의 참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오윤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오윤, [가족2]
[가족2]는 이번 전시회가 아니라 [아시아 리얼리즘] 전시회에 걸려 있는 작품입니다. 별 설명 없이도 이 시대를 살아 보신 분들은 '아하'하며 쓰윽 웃기도 하실 겁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과 이들이 모여 만든 '가족'의 모습 속에 그 사람과 가족의 삶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느껴집니다. 인물 전형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쪽 귀퉁이에 멍하니 엎드려 있는 멍멍이마저 그 시대의 인물로 느껴집니다. 전 이런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고 투박해서 많은 이들의 손길이 가지는 않지만 살아 숨 쉬며 사람과 함께 세월을 살아가는 뚝배기 마냥.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제 할 일 다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화가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바라보며
쪼구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에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