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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니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양사상의 전체 흐름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작업이 우선 필요
… 철학적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부터 읽는 것이 바람직해
페르세폴리스의 부조 아후라 마즈다상. 니체가 말하는 차라투스트라가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다. / 사진·중앙포토
니체사상은 현대 지성에 정신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살아있는 수원(水源)이다.
자기 긍정의 언어를 상실한 시대, 영혼의 근육을 얻고 싶은 이들은 니체의 사상에 접해야 하리라.
“나를 따르지 말고, 너 자신의 길을 찾으라”는 놀라운 가르침을 얻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니체는 누구인가? 왜 현대에 많은 사람이 여전히 니체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니체와 현대의 정신사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현대 문화가 형성되는데 니체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리에게 니체는 누구이며, 우리는 니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청년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며 고통을 겪는 절망의 시대, 한국에서 니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니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900년 니체가 죽은 이후 오늘날까지 116년이 지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오늘날 마르크스가 유령처럼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와 달리 니체의 유령이 여전히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듯하다. 그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의상을 입고 지구촌 정신사의 무대에 출현하고 있다.
현대 정신사의 최전선이나 역사적 사회적 현장에 그가 나타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는 모습이 매우 다양해서, 달리 말하면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해석이 매우 달라 그의 사상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점차 속물화되고 천민화되는 현대 인간에게서 정신적 깊이와 인간적 품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주창자로 니체를 읽기도 하고, 인간 영혼의 내부를 최초로 심도 있게 해부함으로써 현대 심층심리학의 이론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니체를 인간 사유의 한계를 깨뜨리며 사유기호의 자유로운 놀이세계를 열어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또는 우주적 무아(無我)를 주창함으로써 자기 자각을 추구하는 서구적 불교사상으로 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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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근대문명 비평가, 정치철학자, 사회철학자, 생철학자, 실존철학자, 심층심리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서양의 불교학자 등 니체 해석의 의상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여기에는 니체사상을 토양으로 새로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미래철학적 자양분을 삼아야 한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고, 또 강자와 소수 엘리트만을 옹호하기에 니체사상을 경계하고 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극단의 부정적 평가도 있다.
니체는 너무나 그 모습이 다양해서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116년 정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니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니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니체에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니체의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어떤 저서부터 읽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일까?
니체를 읽을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먼저 니체 독해의 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니체사상이 현대 지성사에 미친 거대한 영향의 지평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는 우리에게 니체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지, 즉 한국의 지성사에 미친 니체의 모습도 소략하게 그려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니체 독해가 갖는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니체사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접근로가 있다. 이 접근로에 들어선다는 것은 니체사상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는다는 것이며, 하이데거가 말하듯 니체와 생산적 방식으로 대결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접근로는 단지 걷기 쉬운 둘레길만이 아니라 들어가다 보면 바위와 험한 길도 있는 등산로와도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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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니체의 사상에 심취했던 미당 서정주. 그리스 신화와 보들레르, 니체 등 서구 철학의 자양분을 토속적인 우리 시의 영역으로 재생시켰다. / 사진·중앙포토
첫째, 니체의 생애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니체사상은 그의 생애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사와 만날 필요가 있다. 니체의 연인이자 니체가 살아있을 때 니체 철학의 체계를 밝히는 저서 <저작으로 본 니체(Friedrich Nietzsche in seinen Werken)>(1894)를 쓴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니체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철학자의 인사기록 카드에서 그 철학체계를 밝히는 일, 즉 니체사상을 그의 생애에 주목해 심리학적으로 살피는 일은 니체사상에 접근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 데이비드 크렐과 도널드 베이츠의 <좋은 유럽인 니체>, 이진우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등은 최근에 나온 생애사 중심의 니체 입문서로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책들이다.
둘째, 니체의 사상 내용을 개괄적인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니체사상의 전체적인 개념지도를 입문서를 통해 그려가며 그의 저서를 읽어가도 좋을 것이다. 니체사상은 서양 근대성 비판, 그리스 비극, 이성비판, 종교비판, 허무주의, 관점주의, 커다란 건강, 몸, 생명, 디오니소스, 영원회귀, 극복인(bermensch, 초인), 자기 긍정(운명애), 자기 극복, 자기 찾기, 삶의 예술 등 서양 정신사의 정수에 해당하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니체에게 전복의 철학, 파괴와 해체의 사상, 비판의 철학, 디오니소스의 철학, 미래의 철학, 생명과 치유의 철학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하는 개념어나 주제들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사용하는 개념어와 철학적 주제가 항상 일관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개념도 ‘아폴론적인 것’과 함께 예술을 구성하는 예술충동력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문맥에 따라 도취, 생명, (우주적) 생성 등 다양한 의미도 있다. 그의 사상의 발전과정에 따라 혹은 문제를 제기하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리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개념적 선(先)이해가 없으면 오래된 도시의 길처럼 니체적 언어의 미로에 빠져 당혹과 혼란을 겪게 된다.
그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은 많은 비유와 상징, 패러디가 나오기 때문에 흥미를 주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상징이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정신사의 배경과 그 안에서 사용된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가령 ‘뱀’이라는 단어가 어느 문맥에서는 순환하는 세계의 ‘우주적 진리’로 읽히기도 하고, 또 어느 문맥에서는 ‘허무주의’를 뜻하기도 한다. 젊은 양치기의 목구멍에 검고 묵직한 뱀이 기어들어가 목구멍을 물고 있었을 때 차라투스트라가 내면에서 소리치는 것을 듣고 뱀을 물어뜯어 내뱉고 난 이후 양치기는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여 웃는 자가 되었다는 묘사에서, 뱀은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허무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그것을 물어뜯고 내뱉어버린 자의 내면적 변화를 묘사한 것이다. 또 머리말에 나오는 ‘고향 마을의 호수’란 인간의 개인사를, 즉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각 개인의 생애사를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가 고향 마을과 그 마을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자신의 생애사와 내면적으로 대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물, 호수, 강, 바다는 무의식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기 구원이나 해방은 자신과의 만남에서 가능하며 이는 자신을 찾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 미학, 신화, 종교학 등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국내에 나와 있는 상징사전을 이용해 상징이나 비유의 의미맥락을 살펴보는 것도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니체사상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있다면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비교적 넓은 전망을 얻게 되고, 그 전망 속에서 니체적 언어나 개념적 미궁에 빠지지 않은 채 니체사상을 이해하는 자신의 독해의 길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저작에는 비유나 상징, 잠언의 형식으로 된 글이 산재해 있어 니체의 문체, 상징의 의미, 사상적 맥락, 전체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전망을 얻어야 그의 사상이 만들어놓은 둘레길 혹은 등산로로 들어갈 수 있다.
셋째, 서양사상 전체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니체의 철학적 발화는 언제나 서양 정신사 전체를 향해 있으며 각 시대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발과 비판적 논의가 담겨있기 때문에 서양 정신사나 철학사 전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의 논의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니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논의하는 정신사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는 동시에 현대 속에서 니체를 재해석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그를 읽는다는 것은 서양 정신사와 현대 정신사를 동시에 만난다는 중첩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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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책세상, 글항아리
니체는 푸코가 지적하고 있듯이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와 함께 19세기를 넘어서 현대로 들어가는 거대한 지성의 산맥에 해당한다. 20세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니체를 이해해야 하며,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대결하고 있는 서양 정신사 전체의 문제의식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즉 니체를 이해하는 작업은 서양 정신사 전체와 대결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사상을 해석하며 탄생한 현대사상과 조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니체를 이해하는 둘레길과 등산로가 갈리는 분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분석심리학자 융(C.G. Jung)은 자신이 작은 봉우리에 해당한다면, 니체는 거대한 알프스산맥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산맥을 등정하고 그 안에 있는 광맥을 캐고자 한다면 서양 정신사의 공부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둘레길을 걷다가 재미를 느낄 때 등산로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넷째, 니체 주요저서에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등 철학사에 남는 귀중한 작품들이 많다.
이 저서들 가운데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 제일 먼저 읽어야 책으로 <이 사람을 보라>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광기에 들기 1년 전 자신의 생애와 사상, 생전에 출간했던 책의 내용, 저술의도, 배경 등을 적어 놓은 철학적 자서전이다. 철학자 가운데 죽기 전에 자신의 자서전을 이처럼 완벽하게 정리했던 이도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에는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라는 세 개의 장에서 자신의 생애와 사상을 언급했다. 이어 자신의 주요 저서를 저술하게 된 동기와 그 내용들을 압축해 설명한 이후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라는 장으로 매듭을 짓는다.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이 책을 제일 먼저 읽을 것을 권하는 이유는 이 책에 니체 스스로 자신의 생애와 사상, 문제의식, 그리고 각 저술에 대한 저술동기와 내용 등을 정리하고 정신사에서 자신의 위상을 자리매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차 문헌의 해석이나 어느 학자의 특정한 시각이 아닌 니체의 언어로 그의 저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에 나오는 그 저서에 대한 니체의 언급을 먼저 살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니체 후기사상의 핵심내용이 담겨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이 책은 니체사상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접근로를 제공해준다. 물론 독자의 관심사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니체 저서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초기 저작부터 출판연대기 순으로 하나씩 니체 저서를 읽어가는 것도 니체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체계적인 방법이긴 하나 이는 너무나 지루한 작업이 될 것이며 또 많은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관심에 따라 책을 선택해 읽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서양 근대성 비판과 예술, 비극 등을 이해하고자 하면 <비극의 탄생>을, 역사와 대중문화 비판에 관심이 있다면 <반시대적 고찰>을, 종교·도덕·인간 문제 등 니체사상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읽고자 한다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나 <선악의 저편>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니체 연구에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니체 전집으로는 콜리(G. Colli)와 몬티나리(M. Montinari)에 의해 편집된 <니체비평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이 있는데, 이는 니체의 유고를 임의로 취사선택하지 않고 시대순에 따라 배열하여 출판한 것으로 가장 정확하고 균형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니체전집(전 21권, 책세상)은 이 세계표준판을 옮긴 것으로 서양철학이 국내에 소개된 지 130년 만에 나온 철학 영역에서의 최초의 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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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바그너(오른쪽)와 코지마 바그너. 니체는 한때 바그너를 숭배했지만 그와 결별하면서 가장 신랄한 비판자가 된다. / 사진제공·글항아리
음악에서는 지금까지 약 219명의 작곡가가 420개 작품에서 니체의 텍스트나 시에 음악을 붙여 작곡하거나 그의 음악 이념 혹은 예술정신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니체의 주저 제목을 그대로 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한 슈트라우스(R. Strauss)나 딜리어스(F. Delius), 말러(G. Mahler), 베베른(A.v. Webern), 오르프(C. Orff), 힌데미트(P. Hindemith) 등 수많은 작곡가가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이나 삶의 예술, 혹은 극복의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작곡했다.
또한 불협화음을 해방시킴으로써 무조음악을 창시한 쇤베르크(A. Schönberg)도 니체와 친근한 거리에 있었다. 표현주의 음악을 선도했던 그는 음열 구성에서 복잡성이나 점묘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12음 기법을 체계화하는 ‘신음악(Neue Musik)’을 주도하며 그의 제자인 베르크나 베베른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 20세기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현대미술의 탄생에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아르 누보의 독일적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유겐트스틸(Jugendstil)의 잡지 <판(PAN)>은 그 정신적 이념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왔고, 이 양식을 ‘차라투스트라-양식’이라고 불렀다.
또한 보치오니(U. Boccioni), 세베리니(G. Severini), 카라(C. Carrà), 루솔로(L. Russolo), 발라(G. Balla) 등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들은 니체사상에 나타난 삶의 역동성을 기반으로 기계문명이나 거대도시, 젊음, 운동, 힘, 속도 등 새로운 시대의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서양문명을 비판하며 합리적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회의를 품고 삶의 개혁을 추진하며 일상의 예술작품을 보여준 반(反)예술운동으로서 다다이즘(dadaism)도 실상 니체의 그늘에 있었다. 칸딘스키(V. Kandinsky), 클레(P. Klee), 마르크(F. Marc), 뮌터(G. Münter) 등 청기사(Der Blaue Reiter) 그룹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키르히너(E.L. Kirchner), 헤켈(E. Heckel) 등 다리파(DieBrücke) 화가들은 그 예술모임의 명칭을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빌려 왔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나온 뭉크(E. Munch)는 시대적 불안이나 병리현상 및 그것을 극복하는 빛과 힘, 에너지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딕스(O. Dix)는 전후(戰後) 일상의 어두운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추의 미학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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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더 나아가 초현실주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브르통(A. Breton)은 자아의 생성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경련의 아름다움을 그려냈고, 몸의 리비도가 정신화되어 세계로 유출되는 과정을 수수께끼 같은 영상적 언어로 표현한 달리(S. Dalí)는 아리아드네, 마스크, 기만, 관점주의, 가치전도, 놀이 등 니체적 주제를 변주하며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그려냈다.
데 키리코(G. de Chirico)는 니체에 의존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회화’를 만들어냈으며, 에른스트(M. Ernst)는 가면과 정신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탐구했고, 마송(A. Masson)은 생성소멸의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자각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음악과 연극, 미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행위의 자발성이나 즉흥성, 즉 해프닝을 통해 기존의 인습적 형식예술을 깨뜨리고 비형식적 현실을 찾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플럭서스 운동 역시 니체적 영감을 조형한 것이었다.
현대무용의 새로운 무대도 니체적 영향 아래 펼쳐졌다. 현대무용을 창시한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은 니체를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라고 부르며 <차라투스트라>를 평생 자신의 침대 곁에 놓고 보았으며, 니체에게서 신체의 자연성, 몸의 긍정, 그리스적 세계관, 자유정신을 체현하는 몸의 율동을 얻었고 이를 통해 현대무용의 문을 연 것이다. 그녀는 기존의 무대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가 춤을 추거나 그리스 신전을 찾아가 춤을 추었고, 전통적 발레 형식을 벗어나 벌거벗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자유로운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각성된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와 동시에 우주의 춤에 인간이 참여한다는 ‘운동의 합창’ 개념을 만들고 음악기보법을 최초로 정립한 라반(Rudolf von Laban), 그의 제자이자 ‘무(無)음악의 무용’이라는 표현주의 무용을 만든 마리 뷔그만(Mary Wigman), ‘열린 장’의 개념으로 ‘새로운 춤’을 만든 포스트모더니즘 무용의 아버지 커닝엄(Murce Cunningham) 등도 니체적 실험정신의 표현자로 볼 수 있다.
커닝엄은 무용에서 우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춤의 주제, 주인공, 사건을 떠나 ‘춤의 본질’ 자체에 눈을 돌리게 했다. 몸의 긍정이나 자유정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우연의 강조 등 현대무용의 탄생과정이나 그 전개과정 역시 니체와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무용의 문을 연 최승희 역시 일본의 이시이 바쿠(石井漠)에게서 무용을 배웠는데, 그 역시 니체주의자 마리 뷔그만의 표현주의의 우산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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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생 니체와 긴장관계를 맺었던 누이동생 엘리자베트.
2.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은 1928년 엘리자베트를 만나 니체의 유고를 직접 보았다. 안호상은 국내에 니체를 최초로 소개한 학자로 기록됐다. / 사진·중앙포토
니체는 현대의 심층심리학이나 다양한 심리치료이론이 탄생하고 형성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트(S. Freud)의 정신분석학이나 융의 분석심리학, 아들러(A. Adler)의 개인심리학, 랑크(O. Rank)의 의지심리학 등 인간 영혼의 내면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도한 심층심리학의 탄생 역시 그의 정신적 품 안에서 이루어졌다. 스스로를 위대한 심리학자로 규정하며 서양 정신사 전체를 해체하고 이를 심리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니체의 작업은 인간 영혼의 내면을 탐색하는 수많은 심리학적 자원을 남겼다.
니체사상은 현대의 심층심리학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조산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클(V.E.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ie, 의미치료), 얄롬(I. Yalom)의 실존적 심리치료, 아헨바하(G. Achenbach)의 철학실천(철학상담), 임상철학 등이 형성되고 발육되는 데도 풍부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또한 철학영역에서도 실존주의, 해석학,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페미니즘 등 현대사상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니체의 정신적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이데거나 야스퍼스, 뢰비트, 핑크와 같은 실존철학자는 니체에게서 인간의 실존과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단서를 발견했고,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와 같은 비판이론가들이나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들, 더 나아가 코프만, 브롱델, 이리가레, 엘렌 식수 등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서양 근대의 병든 문명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탈근대적 사유문 법을 찾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진단한 후쿠야마(F. Fukuyama)의 ‘역사 종말론’의 중심에도 니체의 마지막 인간과 극복인 사상이 놓여있으며, 슬로터다이크(P. Sloterdijk)의 현대사회의 문화투쟁론 및 자기 긍정의 언어학으로서의 복음론에도 니체는 여전히 진행형의 이념논쟁을 제공해 주고 있다.
니체는 서양지성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한국에도 깊이 침윤되기 시작했다. 니체와 한국의 중요한 만남 가운데 하나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일어났는데, 예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던 안호상(1902~1999)이 1928년에 철학자 오이켄의 미망인과 함께 니체문서보관소(Nietzsche-Archiv)를 방문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Elisabeth Förster Nietzsche)를 만났던 것이다.
안호상은 엘리자베트의 안내로 니체의 유고를 보았고, 이때 니체의 위대성을 느끼며 니체를 한국에 소개하기로 약속했다. 귀국 후 1935년에 그는 <조선중앙일보>에 7차례 연재형식으로 <니-최 부흥의 현대적 의의>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겠다는 니체 여동생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후일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한국교육의 초석을 놓았으며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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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90년대를 지나며 정동호, 이진우와 필자를 비롯해 독일에서 니체를 연구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여러 연구자의 노력으로 세계표준판 <니체비평전집>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 가운데 다양한 니체사상의 주제가 다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었으며, 여러 학문영역을 가로지르며 현재까지 니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정신사의 다양한 주제나 문제의식이 담겨있는 니체사상은 오늘날에도 현대 지성에 정신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살아있는 수원(水源)이라 할 수 있다.
중앙시사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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