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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니체] 철학을 위한 아포리즘 / 미셸푸코 / 질들뢰즈

한적한길 2016. 2. 16. 18:27

 

< 철학을 위한 아포리즘 - 니 체 >

 

20대의 니체가 진정한 스승을 발견한 것은 어느 헌 책방에서였다.

"나는 그때 근본적인 원칙도, 희망도, 단 하나의 즐거운 기억도 없이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실망스러운 일들만을 겪으면서 절망하여 갈팡질팡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느 날 나는 그의 책을 발견했다.

헌 책방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그 책을 집어 몇 쪽을 넘겨 보았다.

도대체 어떤 악령이 내게 '이 책을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동은 평소 책을 살 때 망설이던 버릇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나는 새로 획득한 보물을 가지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그 정력적이고 우울한 천재가 뿜어내는 마력에 나를 맡겨 보았다.

여기에서 나는 세계와 인생, 그리고 나 자신의 본성이 소름 끼치도록 웅장하게 비치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보았다.

여기에서 나는 병과 건강, 유배와 피난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니체,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2년에 대한 회고>

 

니체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아포리즘과 같은 경구 스타일의 문장을 쓰거나 파편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니체는 종종 오해를 받아왔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새로운 이해를 기다리는 인물이 되었다.

니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을 보라>였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한 후 두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생이 좀 더 가벼워지기를 갈망하면서,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

 

(디오니소스 : 그리스신화 '술과 황홀경의 신' 예언의 능력을 지닌 자연신 / 사티로스Satyrs 반인반수의 자연의 정령.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로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사티로스는 색욕과 악으로 의인화되었다.  영어에서 호색한을 뜻하는 'satyric'은 이 사티로스에서 파생된 단어)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책을 쓰는가?"

19세기 콧수염을 기른 철학자는 정색을 하고 이런 도발적인 글을 썼다.

 

개인적으로 니체는 공손한 사람이었다는게 니체 전기 작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글로 보는 니체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거만하고 무례하고 위악적이다.

그는 왜 존경받는 성인이 되기보다 지탄받는 사티로스가 되기를 희망했을까?

 

아포리즘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

높이 솟은 자만이 그것을 듣는다

 

니체가 주장한 내용보다 방식이 비밀의 열쇠이다.

니체철학은 아포리즘(aphorism)의 철학이다.

그가 쓴 글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구에서 부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비교적 긴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아포리즘이다.

 

아포리즘은 간결하지만 다의적이다.

쉽게 전달되지만 모호하다.

누구나 쉽게 니체를 읽지만, 니체 철학의 이해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는 왜 이렇게 글을 썻을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피와 아포리즘으로 쓰는 사람은 읽혀지기를 원하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산과 산 사이를 가장 빨리 가는 길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가져야만 한다.

아포리즘은 봉우리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듣게 된 자들은 키가 크고 높이 솟은 자여야 한다."

 

단순히 눈으로 읽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아포리즘은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아포리즘은 사물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포리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을 낯설게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 경계를 흔든다.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인류가 세운 고귀한 가치를 집어던진다.

그래서 니체는 고귀한 성인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저속한 사티로스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풍자(satire)는 그 어원이 바로 사티로스에서 온 말이다.

니체는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독한 말을 내뱉기 위해 사티로스를 희망하는 것은 아닐까?

 

니체의 작품 [비극의 탄생]에서 세계의 근저는 디오니소스적인 심연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디오니소스적:몰아적 도취이고 열광이며 생성의 근원에 있는 깊은 에너지이다. 음악적.동적.격정.열광적인 마음의 에너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자연스럽고 원시적인 에너지에 결부시켰고, 아폴로적인 것을 질서가 잡힌 시각적인 미와 자기 인식에 결부시켰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음악이며 합창대의 춤으로 표현된다.

반면에 아폴로적인 것은 개체화의 원리이며 시각적인 장치나 무대상의 배우를 통해서 표현된다. )

그 심연을 덮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노력이 영원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플라톤이 세운 이데아의 왕국은 그런 영원한 세계를 지향한것.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는 없다.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만들어 낸 조건일 따름이다.

 

니체읽기, 니체 식으로 세상읽기는 하나의 사조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어권 철학자를 중심으로 다원화된 세계를 해석하는 틀로 니체의 아포리즘을 이용했다.

미셸푸코:니체 철학이 우리 삶에 어떤 효용성을 줄 수 있는가 물어야한다.

질 들뢰즈:니체를 니힐리즘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창조적인 생성의 철학자로 적극 해석한다.

 

생성과 다원성,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고 엉뚱해 보이는 우연성이 니체가 제시한 아포리즘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니체의 기획은 철학적사유를 새롭게 했는가,

철학적 사유를 멈추게 했는가

히브리스는 무례하고 거만함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술 마시고 방자한 행동을 하는 것도 히브리스 범주에 들어간다.

타인을 모욕하고 수치심을 주는 행위, 자신을 과시하면서 잘난 체 하는 행동도 모두 히브리스다.

니체 철학에 따르면, 히브리스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나오는 것이다.

니체가 꿈꾸는 미래의 철학이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 하는 여부는 히브리스가 가진 이중성을 이해하는 데 달려있는 셈이다.

니체 철학이 크게 의존하는 아포리즘이라는 말에는 이미 경계를 확정 짓는 지평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은 니체의 기획이 히브리스의 위험성을 뛰어넘는 생각의 새 지평으로 보는가,

아니면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철학적 히브리스라고 보는가?

 

[정재영 / 철학자]

 

 

출처 : 심리상담. 감정조절상담. 생활코칭상담
글쓴이 : b612별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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