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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건강한 영국 할머니,왜 스스로 죽음 택했나.

한적한길 2015. 8. 24. 17:47

 

그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평생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다.”

이달 초 스위스에서는 70대 건강한 영국 할머니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간호사 출신인 75세 질 패러우다. 패러우는 지난 2일 바젤에 있는 라이프서클이라는 안락사 병원에서

자기 요구대로 주사요법을 받고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된 나라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 안락사를 받는 경우는 적지 않았지만 패러우처럼 치명적인 병에 걸리지도 않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 죽음을 택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병환은 보통 수준의 약물치료, 간헐적인 허리 통증, 약간의 이명 정도가 전부였다.

마음만 먹으면 상당 기간 더 살 수 있는 그는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질 패러우(오른쪽)와 남편 존 사우스홀이 밝은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사진은 패러우의 사망과 함께 영국과 스위스 언론에 일제히 게재됐다. 사진을 찍은 시점은 올해 초로 보인다. / 텔레그래프 웹사이트 캡처


호스피스 완화 의료전문 간호사 출신
패러우는 한마디로 늙은 게 싫었다. 그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전문 간호사 출신이다.

오랫동안 병든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을 돌보면서 관련된 책도 두 권을 써냈다. 노인들을 돌보는 방법과

함께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는 치료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되는 상태에서 일시적인 처방으로 연명하는 노인들의 처참한 모습, 갑작스런 발작을 겪은 뒤

안쓰러운 상태로 10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괴로웠다.

그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평생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왔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다. 끔찍하다. 나는 이제 막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앞으로 내려가기만 할 뿐 더는

좋아지지 않는다.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70살까지 난 매우 건강하다고 느꼈고,

원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여전히 바쁘고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고 난 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비록 지금 건강해도 내 삶이 다했고 죽을 준비가 돼 있다.”

2년 전 신문 기고를 통해서는 병든 노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지적했다.

“노인들이 사회에 짐이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도 병든 노인들을 돌보다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병든 노인들은 정신적으로 이상하고, 신체도 무기력해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며,

심지어 찾아오는 방문객도 없다. 나는 너무 늦기 전에 이들에게 평화를 주기 위한 처방전을 써주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대소변이 나오고, 욕설을 서슴지 않고, 주는 밥을 먹고 방 안만 돌아다니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쓴 ‘내 마지막 말’이라는 글에서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했다.

“매일매일 나는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마지막 무대에 이르는

자연적인 노화를 따르고 싶지 않다. 내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하면 너무 괴롭다.

자녀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발상이다.

미래에는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미리 행동에 옮기려고 한다.”

그는 스위스로 가기 전에 아들과 딸에게 자기 결심을 알렸다. 자녀들은 고민 끝에 엄마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딸은 “이성적으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25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 존 사우스홀(70)도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내의 뜻을 존중해 함께 죽음을 준비했다.

WP “안락사에 대한 토론에 불 지폈다”
장례식 준비까지 마친 패러우는 남편과 스위스로 갔다. 죽기 전날 라인강변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남편은 “아내는 몇 년 동안 이를 준비했다”며 “분위기를 너무 감정적이거나 무겁게 만들어 마지막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 모든 게 고요했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런던타임스에 따르면 패러우는 죽기 바로 직전 의사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심리적으로도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안락사를 도운 마이클 어윈 박사는 “사람들은 패러우가 좋지 않게 늙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게 잘못됐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나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면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너무 많이 한 그는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수를 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락사가 금지된 영국에서는 최근 패러우처럼 안락사와 안락사 지원이 허용된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08∼2012년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611명 중 5분의 1은 영국인이다.

남편 존은 “만일 아내가 미래에 자신을 불구자로 만드는 발작을 겪을 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사전

의료지침서를 영국에서 쓸 수 있었다면 아내는 발작에 대한 공포에 떨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페러우의 죽음은 영국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돼온 안락사에 대한 토론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논란이 이어지자 스위스 검찰과 안락사 관련 단체들은 패러우의 선택을 옹호하고 나섰다.

에리카 프레지크 라이프서클 회장은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만 살아온 그녀는 몇 년 전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았고,

청력과 거동에도 문제가 있었다”면서 “그녀는 자신이 원한 것보다 더 오래 살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성격의 재단인 엑시트 제네바 역시 “패러우의 결정과 라이프서클의 안락사 지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젤 검찰청의 피터 질 검사는 “사심 없이 타인의 안락사를 돕는 것은 스위스 법률상 처벌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외국인도 안락사 받을 수 있는 나라, 스위스

안락사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뜻이다.  불치의 병 등으로 치료 또는 생명 유지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는 생물을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약물을 사용하는 적극적인 안락사가 있고, 연명치료만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가 있다. 동의 여부에 따라서는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뉜다.

스위스는 1942년 이래로 안락사가 법적으로 보장됐다. 환자가 처방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제다. 자국 국민이 아니어도 안락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자살여행’과 같은 게 생기는 이유다.

뉴헬스가이드(newhealthguide.org)에 따르면 벨기에는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을 2002년 9월에 만들었다. 의사 2명이 개입해야 하며, 환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땐 심리학자도 포함돼야 한다. 약물과 주사요법이 모두 가능하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2010년 말기 불치병 환자로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그의 생명을 끊는 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에이즈, 신장·간 기능 마비, 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상황 등을 허용범위로 규정했다. 루게릭,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은 제외된다.

인도는 수동적인 안락사만 합법화됐다. 영구적인 식물인간 상태에 처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식이다. 아일랜드도 능동적인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아이리시타임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 57%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멕시코도 수동적인 안락사만 허용돼 있다. 말기에 의식이 없는 환자 또는 그의 가까운 인척이 치료를 거부하면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 모두 합법화됐다. 법률은 2002년 통과됐지만 법원은 1980년대부터 이 같은 관행을 허용했다. 의사도 죽음을 원하는 환자를 살려야 할 의무가 없다. 네덜란드 법원은 20년 넘게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를 기소한 적이 없다.



<김세훈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kim@kyunghyang.com>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해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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